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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회

궁말의 위치와 연혁

우리 전주이씨광평대군파는 선원(璿源 왕족전주이씨)의 후예이며 명조이신
세종대왕의 5남인 광평대군의 후광(後光)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명문화족(名門華族)이라는
지칭을 받고 살아 오고 있다.

궁말은 우리의 본거지이며 파종(派宗)의 발상지(發祥地)이다.
우리 선조께서 닦아 놓으신 터전이요 마음의 고향이다.

궁말의 근원지에 관한 지리와 형성과정(形成過程)은 사학가(史學家)요 고결한 학자이신 한말(韓末)의 안성군수를 역임하신 광종(光鍾)공이 편저(編著)한 궁촌지(宮村誌)에서 발췌한 것으로써 광수산(光秀山)은 서울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30리지점 한강 남쪽에 있으니 태종대왕의 능침인 헌릉(獻陵)의 주봉(主峰)인 대모산(大母山) 북쪽 간룡(幹龍)이 된다. 이곳에서 서남쪽 2리에 대모산(大母山)이 있고 동북5리에 송파강(松坡江)이 있고 동쪽 20리에 남한산성이 있으며 그 가운데 탄천(炭川)이 북쪽으로 흘러 산을 보듬고 서쪽으로 빠진다.

대모산 줄기가 동향(東向)으로 높이 솟아 관음봉(觀音峯) 쌍봉(雙峯) 도당현 (都唐峴) 전좌현(殿座峴)을 이루어 궁촌의 남동쪽을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줄기 일맥(一脉)이 비스듬히 동쪽으로 돌다가 대강(大江)의 기운을 거슬려 꿈틀꿈틀 행룡(行龍)으로 높이솟고 남은 산록(山麓)을 박넝쿨이 수염을 거든것 같으니 이곳이 이르되 광수산(光秀山)이며 이 산 양지바른 곳이 곧 궁말이다.

이 산과 마을은 우리 전주이씨 광평대군파의 세장지(世葬地) 곧,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자손의 세거향(世居鄕)이다.

살펴보건데 서기 1470년(성종원년)에 당시 광주(廣州)군 서쪽 이을언리 (伊乙彦里) 수토산(水土山)에 영순군을 예장하였다. 이곳은 세종대왕의 4남 임영대군(臨瀛大君)의 수장(壽藏:생전에 미리 무덤을 만들어 두는 무덤)으로 미리잡아 놓은 곳인데 조카 영순군에게 양여 하였다고 이른다. 이는 곧 우리 광평대군파가 궁촌에 자리잡아 살게 된 시초이다. 그로부터 26년후 서기 1495년 (연산군 1년)에 무안대군 광평대군의 묘소를 광주(廣州) 서촌(西村) 학당리 (學堂里)로부터 영순군 묘소 국내인 이을언리 수토산으로 이장(移葬)하였으니 이는 선릉(宣陵;성종대왕릉)을 모시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영순군의 아드님 남천군, 청안군, 회원군 삼형제분이 이 山 아래 집을 지어(三宮)이라 일컬었던 바
이로부터 마을을 궁말이라 이르고 산을 광수산(光秀山) 이라 일컬어 왔다.

그 후 수서리(水西里)라 불러온 것은 안성군수를 역임한 광종(光鍾)공의 父親이신 密陽府使
범선공(範善公)의 아호(雅號) 수서(水西)를 따 水西里라 하였으며 지금은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이라 부른다.